제주도에서 피자집을 오픈했을 때의 생각을 정리해 본다. 사소한 생각들이지만 이 초심이 다음에 시작할 사업에 도움일 되기를.
1. 자부심
작은 식당을 시작하면서 마인드 컨트롤의 중요성을 느끼고 있다. 식당일은 정신력이 전부라는 느낌도 든다. 사실, 음식은 매뉴얼대로 만들면 된다. 정해진 양의 재료를 정해진 도구와 정해진 방법으로 조리하면 된다. 숙련되면 이론으로 풀 수 없는 자기만의 감각이 생기겠지만, 이 감각이라 것도 결국 자기만의 매뉴얼이다. 그래서 요리는 단순 노동이라고도 볼 수 있다.
물론 음식에 정성을 다하는 분들도 많다. 그런데 '정성'을 다르게 말하면, 수백 수천 번의 반복을 통해 단련한 정교한 기술이다. 정교한 기술도 결국 기술이기에 노동의 영역이 된다. 더구나 같은 음식을 매일 수년 동안 반복해서 만들면 역시 단순 노동이라고도 볼 수 있다.
'정성'을 고객에게 최고의 음식을 전달하고 싶은 열정, 최상의 음식을 만들고 싶은 열정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열정은 감정이기에, 다른 감정과 마찬가지로 반복되면 결국 무감각해진다. 열정은 어느새 사라지고 단순 반복하는 기술만 남게 된다. 결국 역시 노동이 된다.
음식에 들이는 정성과 노동을 폄하하려는 게 아니다. 내가 직접 식당을 해보니 음식을 만드는 일은 노동에 가깝다는 걸 많이 느끼고 있다. 이는 설거지, 기자재 관리, 재료 관리, 매장 관리 등의 일은 빼고 음식 만드는 일만을 두고 말한 것이다. 식당 안의 다른 일들까지 함께 얘기하자면 식당일은 종합 노동 선물 세트이다.
식당일은 결국 반복되는 노동이고, 식당 주인들은 버텨야 살아남을 수 있다. 반복되는 노동을 버티려면 마인드 컨트롤이 중요해진다. 어떤 마인드 컨트롤? 반복되는 일을 하고 있지만, 현재 나만의 정교한 감각과 기술을 쓰고 있는지 자부심을 주기적으로 느껴야 한다. 매일 똑같은 음식을 만들고 있을지라도, 내가 만든 음식으로 고객들이 맛있게 먹는 모습을 상상할 수 있어야 한다. 앞서 말한 '정성'을 의도적으로 느껴야 한다.
내 기술에 대한 자부심과 내 음식이 주는 밝은 영향력. 이것은 누가 알려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배울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스스로 짜내서 본인 머리에 새겨야 한다. 습관으로 만든다고 새겨지지도 않는다. 습관으로 만들면 앞서 말한 단순 노동이 돼버리니 의미가 없어진다. 반복되는 노동으로 삶이 무료해진다 싶을 때 재빨리 자신의 정신 상태를 알아채야 한다. 그리고 곧바로 자기만의 자부심과 영향력을 느끼며 감정을 고양시켜야 한다.
억지로 자부심을 느끼면서도 자연스러워야 된다. 억지일지라도 그 자부심은 진짜여야 한다. 이럴 때 상상력을 이용하자. 상상으로 진짜 자부심을 느끼자. 자부심을 가져야 우리 자영업자들은 버틸 수 있다. 없는 자부심을 느끼려면 상상력도 필요하다. 내가 그렇게 버티고 있다.
2. 한계
직장인이라면 자신의 커리어에 대해서만 한계를 느낀다. 그런데 우리 자영업자는 자신의 상품, 매장, 유통 등 말 그대로 모든 면에서 한계를 느낀다. 모든 결정을 일일이 자기가 해야 하니 직장인과 다르게 더 많은 한계를 느낀다. 직장인은 일터에서 종이 한 장을 쓰는 데 별 걱정을 안 하겠지만, 자영업자는 종이 한 장도 다 돈이기 때문에 결코 쉽게 쓰지 못한다. 이렇듯 자영업자는 한계를 자주 느끼기 때문에 한계에 대한 마인드 컨트롤이 필요하다.
한계에 대해 생각해 보자. 한계의 본질은 '느낌'이다. 매장 안에만 계속 있으면 매장이 한계라 느껴진다. 고객수가 적으면 적은 고객이 한계라 느껴진다. 경제가 안 좋아지면 이 환경이 한계라 느껴진다. 우리는 한계를 '느낀다'. 한계는 느낌이기 때문에 느끼지 못하면 한계를 모르고 지나갈 수 있다. 키가 170인 사람은 170이 한계라 느끼겠지만, 키가 180인 사람은 170인 키를 느끼지 못하기 때문에 170을 한계라고 느끼지 않는다.
결국, 한계를 극복하는 방법은 한계를 한계라고 의도적으로 느끼지 않는 것이다. 처음에는 한계라고 느껴지겠지만, 마음을 가다듬고 한계가 아니라고 느끼는 것이다. 그런데 한계 자체를 느끼지 않으려고 하면 안 된다. 인간은 어떤 느낌 1개만 가지고는 그 느낌을 거부할 수 없다. 코끼리를 생각하지 않으려면 일단 코끼리를 생각할 수밖에 없듯이, 어떤 느낌을 거부한다는 것조차 그 느낌에 집중하는 것이다.
그러니 한계라는 느낌을 거부하는 방법은 한계가 아닌 다른 것을 느끼거나 생각하는 것이다. 인간은 한 번에 한 가지 생각 밖에 못한다. 한계를 생각하고 느끼면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한계를 거부하려고 해도 한계를 느낄 수밖에 없다. 다른 생각을 해야 한계를 느끼지 않을 수 있다.
대표적인 방법은, 위기는 기회라는 말처럼 한계를 기회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손님이 적은 한계는 나에겐 어떤 기회일까? 사회 분위기가 안 좋은 한계는 나에겐 어떤 기회일까? 기회라고 느끼고 생각하다 보면 한계라는 느낌은 사라진다. 손님이 적은 상황은 물론 존재하지만 그것이 한계라고 느껴지지 않는다는 말이다.
한계를 극복하는 해법이 너무 뻔한가? 중요한 건, 이런 방법론이 아니다. 한계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에 맞게 '반응'하는 것이다. 한계의 본질은 그저 내 몸이 느끼는 느낌, 감각일 뿐이라는 본질을 알고 그에 맞춰 반응하자. 내 느낌, 감각은 내 뇌가 느낄 뿐이지 원래는 존재하지 않는다. 한계라는 느낌을 찾아보라. 머릿속에서 밖에 못 찾는다. 존재하지도 않는 것에 내 가게, 내 사업체를 맡길 것인가?
'기회'라는 것도 감각이고 느낌은 아니냐고? 맞다. 기회도 감각, 느낌이다. 실제로 존재하지 않고 내 머릿속에만 있다. 하지만 한계나 기회 둘 다 존재하지 않는데 둘 중 하나를 택해야 한다면 이왕이면 기회를 택하는 게 낫지 않을까?
당신은 한계를 느끼기로 선택할 수도 있고, 기회를 느끼기로 선택할 수도 있다. 한계를 느끼기로 했다면 오늘도 당신은 한계 속에서 허우적 댈 것이다. 기회를 느끼리로 했다면 뭐, 당장은 허우적거릴 순 있겠지만 앞으로 조금씩 나아가고 있을 것이다. 한계에는 아무런 방향이 없지만, 기회에는 방향이 있기 때문이다.
- 2023. 5. 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