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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읽고 써야 한다 (1)

by 바이부다 2024. 1. 30.

 

- 고미숙 님이 쓴 <읽고 쓴다는 것, 그 거룩함과 통쾌함에 대하여>. 이 책은 정말 오랜만에 즐겁게 읽었다. 저자는 인문학적 접근으로 읽기와 쓰기의 필요성을 보여준다.

 

- 이 책을 읽으며 내가 '학자나 전문가가 고전, 인문, 작품 등을 자기만의 관점으로 해석한 책'을 재미있게 읽는다는 걸 발견했다. <이미지 인문학>, <호모 데우스> 이후 즐겁게 읽은 책이다. 나는 지적 호기심 장르를 좋아한다. 

- 인문학을 에세이처럼 풀어서 가볍게 읽으면서도 지적 호기심을 충족할 수 있어 좋았다. 

- 지적 호기심이 제대로 충족되면 작가가 인용한 다른 책이나 그 작가가 쓴 다른 책을 읽고 싶어 진다. 이 책이 그렇다. 책에서 인용한 열하일기, 계사전, 금강경 등이 읽고 싶어 져서 예스 24 장바구니에 넣었다. 고미숙 작가의 다른 책들도 넣었다. 동의보감 시리즈, 열하일기 시리즈가 궁금하다. 이렇게 좋은 책은 다른 책으로 이어진다. 생각이 생각으로 이어진다.

- '쓰기 위해서 읽어라'는 말이 가장 인상적이었다. 쓰기의 중요성을 강조하면서도 제대로 읽는 방법을 내포한다. 

- 쓸 생각으로 읽으면 책이 다르게 보인다.  최근, 평소 생각을 정리할 필요를 느껴 글을 쓰기 시작했고 쓰다 보니까  생각을  더 잘 정리하려면 잘 읽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쓰기 위해 읽어라'가 마음에 훅 들어왔다. 쓰기 위해  읽으면 절대 한 번 읽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핵심을 찾기 위해 다시 읽어야 하고 내 스타일대로 재구성하기 위해 또 읽어야 한다. 1번째는 호기심으로 읽지만 2번째부터는 창조하기 위해 읽는다.

- 기억이 정확하진 않지만 인상 깊었던 내용: 하늘과 땅 사이에 있는 인간으로서, 세상을 읽어 사유를 창조하는 것이 인간의 본연의 역할이다.  현자들이 창조한 사유를 바탕으로 세상이 만들어져 가고 있는 것을 보면, 읽고 쓰기 없이는 인간이 동물과 다를 바 없다. 읽고 쓰기를 통해 사유를 창조하면 세상을 더 좋게 만들 수 있고 인생도 변화시킬 수 있다. 읽고 쓰기로 생각을 정리하고 창조하여 자신의 철학이 세워지면 무의미했던 인생에 의미를 더하게 되어 진정한 자유를 누릴 수 있다. 자유란 갖춰진 범위 안에서 주체적으로 결정하고 행동하는 것인데, 철학이 없으면 범위를 정할 수도 없고 주체성을 가질 수도 없다.  읽고 쓰기란 인간으로서 자연스러운 일이고 잘 사는 인생을 위해서도 필요한 일이다.

- 책 한 권을 읽고 리뷰를 쓰면  부족함이 느껴진다. 왜냐하면 그 책에 대해서만 썼기 때문이다. 관련 경험을 써도 역시 그 책을 벗어나지 못한다. 다음에는 다른 책을 읽고 연결해서 써봐야겠다.

- 이왕 읽는다면 고전이 좋다. 인간이 지닌 문제들의 핵심은 결국  인문 고전에서 다룬 사유를 벗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수백, 수천 년 전에 현자들이 이미 다 생각해 놓고 글로  남겨 놓으셨다. 고전은 그냥 보려면 어려우니 고미숙 작가의 책으로 시작하자.

- 사물을 처음처럼 만나고, 매 순간 차이를 발명하고, 보이지 않는 것들을 서로 연결할 수 있는 것, 이것이 글쓰기의 동력이다.

- 뉴런은 그 자체가 연결망이다. 삶이 곧 연결이다. 하늘과 땅, 이곳과 저곳, 이 사람과 저 사람, 거대한 것과 미세한 것, 어제와 오늘과 내일, 행동과 마음, 신과 인간... 연결로 생각은 커진다. 생각의 크기가 존재의 크기가 된다.

- 계속되는 연결은 결국 무지에 도달한다. 연결의 다음 레벨은 의도적 무지 또는 탈출이다. 생각에서의 탈출. 생각을 멈추는 것.  멈추는 것이 오히려 최고의 능동성이다.

- 멈추면 자기 존재의 위치를 알게 된다. 생각을 연결해 앎을 확장하라. 확장의 끝에서 무지를 깨달아라. 생각을 멈춰라.  생각을 멈추면 존재의 위치가 보인다.

-  읽기와 쓰기의 재료는 말이다. 말의 본질은 세상의 연결이다.  말을 읽고 말을 써서 세상을 연결하는 것이 앎이다.

 

- 인간은 하늘과 땅 사이에 두 발로 서는 존재이다. 인간의 역할은 하늘과 땅을 연결하는 것이다. 연결은 배움을 통해서 가능하고, 배움은 읽고 쓰기를 통해서 가능하다.

 

- 배움은 인간이 존재하는 이유이다. 배우고 때로 익히면 즐겁다는 공자 님 말씀은 존재의 이유를 나타낸다. 거기에 친구와의 만남까지 더해지면 존재는 완성되리라. 배움과 친구. 이 둘을 합하면 공부한 것을 친구와 나누기, 친구와 함께 공부하기 정도가 되겠다.

 

- 연결하려면 배워야 하고, 배우려면 연결해야 한다. 생각에 생각을 연결하라. 마지막엔 생각에서 탈출하라. 생각을 멈추는 것이야말로 최고의 능동성이다. 

 

- 배우면 무지에 도달한다는 역설. 아직 모를 레벨이지만 추측해 보자. 세상은 혼란의 세계. 배움으로써 혼란에서 질서를 발견한다.  수많은 질서들을 연결시키니 그 모습은 결국 혼란이었다. 이제는 혼란 자체를 다른 레벨의 질서로 받아들인다. 혼란과 질서의 경계가 사라진다. 혼란의 세계로 돌아왔지만 그곳은 이제 질서의 세계이기도 하다.

 

- <위대한 시크릿>에서는 '나라는 존재는 알아차림 그 자체이다.'라고 한다. '알아차림'에는 아무런 배움이 없다. 스스로가 알아차림이라는 것을 느끼면 된다. 그 자체가 최적의 상태이기 때문에 뭔가를 더 배울 필요가 없다. 최적의 상태는 무지의 상태인 것이다. 이 상태로 평생 살면 마음이야 편하겠지만, 그래도 나는 돈도 많이 벌고 배우는 즐거움도 누리고 싶다. 알아차림의 상태를 배경으로 깔고, 그 위에서 돈 벌고 배우자.

 

- "무슨 일을 하든, 어디에 있든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자기가 서 있는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다. 자신과 세계가 마주치는 접점을 알려면 하늘을 봐야 한다.  그다음엔 자신이 발 딛고 있는 땅을 살펴야 한다. 방향이 어디인지, 좌표값이 얼마인지. 거기에서 삶의 비전이 나온다." 이것을 쉽게 바꾸면 읽기와 쓰기가 된다.

 

- 말이야말로 인간을 규정하는 결정적 키워드다. 신과 인간을 연결하는 것도 말이다. 말은 삶의 보이는 영역과 보이지 않는 영역을 연결한다. 말은 본래 신성한 것이다. 말의 신성함은 세상을 연결한다. 적당한 때에 유익한 말, 가르침이 있는 말, 새길 가치가 있는 말, 이유가 있는 말, 이익이 되는 말을 해야 한다.

 

- 읽기와 쓰기는 함께 하는 것이다. 읽기만 하면 책은 머릿속에서 물거품이 되어 사라진다.  쓰기를 통해 세계는 온통 생성과 창조의 현장이 된다.

 

 

- 산다는 건 하늘, 땅, 인간의 삼중주이다. 인간은 자연, 생명, 우주와 떨어진 채 살아갈 수 없다. 자연을 단절시키면 인간은 소외된다. 책에는 이 삼중주가 어우러지는 지혜가 담겨있다.

 

- 책에서 정보를 얻는 건 그다지 중요하지 않다. 책은 자신을 발견하는 경이로움을 선사한다. 읽기와 쓰기로 세상은 온통  생성과 창조의 현장이 되고 그 현장에서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내가 읽는 책이 곧 나 자신이다.

 

- 아드레날린, 도파민은 쾌락. 세로토닌은 환희. 읽기와 쓰기는 세로토닌을 만들어낸다. 읽고 쓰면 환희가 온다.

 

- 인식을 바꾸고 사유를 전환하는 활동을 매일, 매 순간 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역시 써야 한다. 쓰면 구경꾼에서 생산자로 바뀐다. 남이 걷는 길이 아무리 멋지고 아름다워도 내가 걷는 단 한 걸음과는 비교할 수 없다.

 

- 낳고 낳고 오직 낳을 뿐. 이것이 우주의 이치다. 인간도 이 우주적 행위에 동참한다. 그것이 인간의 본성이고 생존 법칙이다. 니체에 따르면, 인간은 생식 욕구와 생성 욕구만을 느낀다. 생식은 아이를 낳는 것이고, 생성은 가치를 창조하는 것이다. 가치를 만든 것은 쓰기를 통해 가능하다. 천지가 만물을 낳고 낳는 그 마음을 진리라고 부른다. 그 진리에 다가가는 길은 가치의 창조에 있다. 가치의 창조는 쓰기의 능력과 분리될 수 없다.